[조선일보] “유권자는 유목민… 특정정당 무조건 따르지 않아”




‘5·31선거 그후’ 김용준·김민전 교수 대담
'오세훈 돌풍' 의미는 한나라 바꾸라는 주문 극우득세땐 역풍불 것
책임져야할 집권자가 사과커녕 반성도 없어 여당의장 사퇴론 부족


5·31 지방선거’의 결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앞으로 우리 사회가 좀 더 통합적인 방향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원로 지성인인 김용준 교수와 소장파 정치학자인 김민전 교수의 대담을 마련했다.

◆5·31선거 결과를 어떻게 볼 것인가

김용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결과를 보고 정말 눈앞이 캄캄하더군요. 이건 기현상이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에요. 이렇게 일방적인 결과가 나온 것은 결국 집권자의 책임입니다. 이 사람들이 2002년에 집권한 것 자체야 뭐라 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나 준비 없이 집권을 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지요. 김대중 전 대통령만 해도 그가 한 일이 옳든 그르든,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나름의 원칙(principle)은 있었으나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원칙조차 없었어요. 당 자체가 자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인데, 이런 결과가 나오면 침통한 표정으로 국민에게 사과라도 해야 할 텐데 반성도 없어요.

김민전: 시작하기도 전에 결과가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도 투표율이 예상보다 높았던 것은 화가 난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몰렸기 때문입니다. 현 정권이 국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이 집권정당 몰락의 가장 큰 원인입니다. 선거기간 중의 여론조사를 보면 노 대통령 지지율이 35~40% 선이었던 데 비해 지방자치단체장 중에선 70~80%의 지지를 받는 사람도 있었어요. 중앙 정부의 무능이 지방자치단체들의 유능함과 대비된 것이지요. 경제성장이나 일자리 제공, 심지어 정치개혁 부문에서도 사람들은 ‘한나라당이 더 잘 할 것’이란 반응을 보였습니다. 결국 정부 여당의 실정(失政)에 대한 반사(反射)인 것이지요.

김용준: 노 대통령 초기에 절대 지지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요지부동이라 하더니, 그것마저도 이제 무너지는 게 아닙니까? 처음 대통령이 됐을 때는 ‘어쨌든 저 분이 됐으니까 이런 방향으로 나가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색깔마저도 선명하지 않아요. 우리나라 대통령 권한은 조선시대 임금보다 큽니다. 이승만 박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이 한 번만 바뀌면 나라 색깔이 다 바뀌었지요. 결국 책임은 노 대통령에게 있는 겁니다. 그런데도 여당을 책임지고 끌어가야 할 사람이 오히려 선거에서 뒤로 물러나 있었으니 그런 무책임이 어디 있겠어요.

김민전: 노무현 정부 초기와 후기의 정책노선이 바뀐 것은 사실입니다. 그 와중에 처음 열린우리당 지지세력의 3분의 1이 한나라당으로 흡수됐고 다른 3분의 1은 민주노동당으로 갔어요. 한나라당으로 간 경우는 ‘정부가 너무 왼쪽으로 간다’는 이유였고, 민주노동당 쪽은 그 반대였죠. 자신의 비전을 가지고 좀 더 합리적으로 실천하면서 기조를 유지하지 못한 것이 여당 지지기반 잠식의 중요한 요인이 됐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공천 과정의 민주성이 오히려 한나라당에서 더 높았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한나라당의 경선 비율이 높았던 반면 여당은 ‘전략공천’이란 이름으로 아예 민주적 경선을 포기하기도 했으니까요. 국민들은 열린우리당의 원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회의를 품게 됐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대통령 못지않게 열린우리당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겠지요.

◆ 2년만에 정반대 결과가 나온 이유

김용준: 사실 저는 열린우리당을 썩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 속엔 ‘이쪽이 못 하는 것을 저쪽이 시원시원하게 해줄 수도 있을 텐데’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권 중에 만든 당이 집권 끝나기 전에 간판을 내릴지도 모를 지경까지 왔어요. 하는 것을 보면 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안목이 없을까 놀랄 때가 많습니다.

김민전: 프랑스 철학자 자크 아탈리의 ‘유목민’ 개념을 도입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3김(金) 정치 시절까지는 ‘미워도 다시 한번’이란 정서가 있었어요. 정치 지도자와 정당과 유권자 사이에 끈끈한 유대관계가 존재했습니다. 2002년 대선부터는 유권자가 이 관계를 벗어나 ‘유목민’이 된 것이죠. 이쪽이 옳다 싶으면 그쪽으로 옮겨갔다 다시 다른 쪽으로 가고, ‘창조적인 파괴’도 서슴없이 해 버립니다. 아탈리의 기업 분류 중에 ‘서커스형’이 있는데 같은 이름만 유지할 뿐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모였다가 흩어지기도 하는 것이죠.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처럼 정당 핵심권 밖에서 들어온 후보가 더 영향력이 컸던 이번 선거에 맞는 분석입니다.

김용준: 그렇다면 이번에 한나라당으로 쏠린 현상이 대선까지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말이 되겠군요. 대선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있고 그 ‘유목민’ 얘기처럼 유권자들은 또 옮겨갈 수 있을 테니까요. 대통령 당선 이후 부랴부랴 만들어진 열린우리당과는 달리 한나라당은 오랜 기간 기반을 쌓은 당이지만, 정신차리지 않으면 또 민심이 떠날 겁니다.

김민전: 열린우리당이 긍정적인 역할을 한 점도 있습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전국정당을 지향했고, 정치개혁을 하려 했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한나라당에도 영향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실패한 데에는 기간 당원들의 부정적인 역할이 컸습니다. 집권당이라면 국민의 중간적인 성향과 가까웠어야 하는데 초기에 이념적으로 경도된 기간당원들이 대다수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 정책들을 너무나 성급하게 추구하면서 좌지우지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과 멀어진 것이지요. 대통령의 내각제 방식의 국정 운영도 들 수 있겠지요. 많은 여당 지도자들이 내각으로 들어가 노무현 정권과 공과(功過)를 함께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초선 의원들이 어떻게 내각을 견제하겠어요? 탄핵 이후 과반수를 얻게 돼 자만심이 커진 탓도 있지요.

◆ 앞으로 1년 반, 어떻게 해야 할까

김민전: 요즘엔 오히려 이념적인 중도층이 상당히 두터워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분열적인 이슈는 북한과 미국 문제였는데, 상당히 통합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북한은 같은 민족이니까 무작정 도와 주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젊은 층으로 갈수록 상당히 실용적인 입장이지요. 미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주요 정치지도자 중에서 가장 진보적인 노 대통령만 하더라도 처음엔 ‘미국 안 가봤다’ ‘반미(反美)면 어떠냐’고 하다가도 결국 한·미동맹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하지 않습니까? 적어도 이걸 흔들려고 하는 이슈는 이제 나오기 힘들 것이고, 이념적인 갈등 역시 상당히 줄어들 것입니다. 다음 선거는 큰 이슈보다는 훨씬 생활밀착형 이슈가 다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 선거 결과가 정부 여당에겐 당혹스럽겠지만 그걸 개헌이나 정계개편 같은 정치적 방법으로 풀면서 정국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나라당은 힘이 있을 때 조심해야지요.

김용준: 6·25 전쟁을 겪은 나로서는 아무리 박정희 정권 때 해직을 겪었다 하더라도 지금 정권이 북한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감정적으로 허용이 되지 않아요. 미국 관계도 그래요. 앞장서서 반미(反美)를 외치는 사람들 중에 정작 미국에 유학 갔던 나보다도 더 오래 미국에 살면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많은데 참 이해가 안 돼요. 노 대통령은 과거에 미국하고 잘 안 되면 중국하고 잘 하면 된다는 냄새를 풍겼는데 정말 위험한 생각이죠. 이제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든 야든 극단의 사람들은 뒤로 물러서고 중도적인 사람들이 중심을 잡고 통합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김민전: 만약 우파 진영에서 한나라당의 압승을 빌미로 좌파나 중도좌파 진영을 과도하게 압박한다면 중도적 성향의 국민들은 다시 빠져나올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이길 가능성은 없게 됩니다. 만약 극우 성향의 주장들이 부각한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습니다. 오세훈 당선자가 지지를 얻은 이유를 분석하면, 바로 한나라당을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심리가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김용준: 국민소득 2만달러 가깝게 됐습니다. 이 정권이라 해도 옛날식으로 무지막지하게는 못 할 테고 균형적이고 통합적인 쪽으로 갈 겁니다. 이번에 한나라당에서 오세훈 당선자가 나오는 걸 보고 ‘아, 저런 가능성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당들이 좀 더 겸손해지면서, 국민들이 미간을 찌푸리지 않아도 될 그런 인물들을 앞세우게 된다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점에서 일부 한나라당 골수 지지자들도 반성해야 합니다. 마치 자기들한테 정권이 다시 돌아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면 그거야말로 큰 일입니다. 여당은 당 의장 사퇴 정도가 아니라 국민에게 감격을 줄 수 있는 진정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진행=홍준호 선임기자 jhhong@chosun.com
정리=유석재기자 karma@chosun.com
입력 : 2006.06.01 23:52 12' / 수정 : 2006.06.01 23:54 54'

fontSet();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투표결과에 선거전부터 그 뒤까지 참 말이 많다. 말이 없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를 대선때까지 유지해 나갈 수 있는가? 또 다른 제2의 노풍이 불어서 혹은 일명 누리꾼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정치를 본다면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를 이루어낸 국민들의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이다.

나라를 운영한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한순간의 발언이나 행동, 제스춰로 나라를 이끌어 가겠다는 그런 발상을 하는 정치가나 그런 정치가의 행동이 멋있다면서 그를 옹호하고 뒤따르는 세력들을 볼 때면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잘못을 했을 때, 바보는 자신의 행동으로 그 결과를 겪고도 뭐가 뭔지를 모르다고 했다. 보통사람들은 그 결과를 겪어서야 깨닫고 후회를 한다고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리 알고 그런 결과가 오지 않도록 행동한다고 했다.

다시는 이런 바보같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했으면 싶다.  

by 진공 | 2006/06/02 11:13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bigcap.egloos.com/tb/6168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